코리아일보 특집] 학종 교대 입학 탐구 프로젝트 2편
코리아일보 특집] 학종 교대 입학 탐구 프로젝트 2편
  • 코리아일보
  • 승인 2019.01.29 14: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장에는 있고 학교에는 없다 직업인 인터뷰

학교 민주주의, 우리의 저항으로부터 – 000

광장에는 있고 학교에는 없다
광장에는 있고 학교에는 없다

"역사는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었다고." 대한민국은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치고 일구어 온 역사와 경험을 갖고 있고, 대한민국의 사회는 민주주의에 한 발씩 다가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사회와 다르게 학교는 여전히 민주주의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억압받는 학생과 교사들에 대해 침묵한다. 앞장서서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할 학교에서는 학교의 종교 강요와 보충수업 강요 등에 반대하여 문제를 제기했다가 끝내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던 학생, 고등학교에서 안녕들 하십니까대자보를 붙였다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한 학생처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일상의 가르침이 되었다. 대다수가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침묵하고, 누군가 문제 제기를 하면 그 사람은 조직의 배신자가 되며, 철저히 따돌려지고 무시당하고 외면당한다. 지금의 학교는 그런 곳이다.

광장에는 있고 학교에는 없다(홍서정 외)’는 학교 안에서 부조리한 일들과 마주하며 일상 속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를 겪고 있는, 일상의 문제들에 맞서 저항하고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운 학생과 교사들의 경험이 담겨 있고, 이 책은 우리에게 학교에서의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지난 겨울 방학에 우연히 만나게 된, 대구에서 시국 선언을 했다던 한 친구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 친구의 시국 선언은 SNS와 뉴스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그 친구는 학교에 미리 이야기 하지 않고 시국 선언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교장실에 불려가게 되었다. 그 친구뿐만 아니라, 그 친구의 역사 과목 선생님도 같이 불려가 학생에게 잘못된 교육을 했다며 혼났다고 했다. 학교와 학교 교육은 민주주의를 교육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고,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면서도,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는 학생과 교사는 결국 잘못된행동을 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2017 ‘우리의 초상직업인 인터뷰 프로젝트 보고서

사각형입니다.

학교가 민주주의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교사와 학생의 저항만으로는 민주주의에 다가가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우리가 억압받고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저항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어야 그 목소리들이 모이고, 모여 민주주의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한,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라."라는 체 게바라의 말처럼 민주시민으로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당연시 생각했던 것에 대해 반성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광장에도 있고 학교에도 반드시 있어야할 것 – 000

지난 3,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부정한 짓을 저지르고 국민들에 의해 탄핵 당했다. 나라를 대표하던 정무직 공무원이 범죄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선고일은 평일이었고, 또 오전이었으므로 우리는 모두 학교에서 탄핵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이미 뉴스를 틀어놓고 대기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2교시 쯤 경제선생님이 옆 반에서 탄핵뉴스를 틀어주셨는데, 반을 꽉 채우는 인파가 몰릴 만큼 뜨거운 열기였다. 3교시는 우리 반에 경제 수업이 있어 반에 앉아 친구들과 손을 붙잡고 탄핵 선고를 들었다. 탄핵 시위에 나갔을 때만큼 가슴이 벅차올랐다. 헌법 제 12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그 말을 실질적으로 확인받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기뻐하는 와중에도 걱정되는 것이 하나있었다. 경제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탄핵방송을 보여주셨다는 게 알려지면 왠지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괜한 오지랖이 아닌 경험에서 비롯된 걱정이었다.

작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시기였던 것 같다. 박근혜 정권이 국정농단을 한 사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교실에서도 활발히 정치적 이야기가 오가던 때였다. 그에 맞게 교실이나 정수기 뒤 벽, 신발 신는 곳 등 이곳저곳에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치는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가만히 서서 대자보의 내용을 읽으며 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이렇게 표현하는 것에 감동을 받기도 했는데, 그것들을 오래 볼 수는 없었다. 언젠가 학생부 선생님을 뵈러 교무실에 갔을 때, 학생부장 선생님이 테이프로 붙여놨던 대자보를 떼어 학생부에 걸어놓고 대자보를 붙인 을 찾고 계셨기 때문이다. 내가 교무실을 나갈 때 나에게 박근혜 정권 퇴진을 주장하는 대자보를 붙인 아이가 누군지 알아보라는 말도 하셨다. 알아보지도 않았지만, 만약 그 학생을 찾아냈다면 무슨 말을 하려 하신 걸까? 과연 공부로 바쁜 와중에도 정치에 관심을 갖다니 기특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 하신 걸까? 아마 학교가 정치판이 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며 경위서를 쓰게 하지 않으셨을까? 괜히 억울했다. 학생은 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어른들의 보호 안에서 주변에 관심 갖지 않고 공부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도 이 감정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난 학생이고, 선생님의 말에 반박해봤자 혼날 게 뻔했으므로 그저 혼자 우울해하는 것밖엔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그랬다. 어쩔 수 없다고, 그렇게만 생각해왔었다.

2017 ‘우리의 초상직업인 인터뷰 프로젝트 보고서

사각형입니다.

학생의 생각을 표현했을 뿐인 대자보가 교사의 손에 당연히 떼어지고, 학생이 정치에 대해 얘기하는 선생님의 안위를 걱정하고, 교사의 권위에 학생의 의견조차 당당히 말할 수 없는 이곳엔 분명 민주주의가 없다. 하지만 이것이 학교에 민주주의가 없어야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광장에는 있고 학교에는 없다의 저자들처럼 학교 민주주의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고, 이 책을 읽고 경각심을 갖는 나 같은 학생들이 있다. 물론 친구들과 토론할 때 들은 얘기나, 학생회와 선도부를 하며 직접 겪은 일들이나, 한 학생으로서 당한 많은 부당함을 떠올려봤을 때 학교가 민주주의를 되찾는 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학생이 급하게 화장실을 가고 싶거나 아파서 보건실을 가야할 때까지 교사의 허락을 구해야하는 것은 이상하다는 말, 교사로서 부당한 정치권력에 대한 사실조차 학생들에게 알리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 오히려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은 나에게 울림을 주었다. 이 울림을 잊지 않고 내가 꿈을 이뤄 교사가 되었을 때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교사와 학생은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고, 학교엔 민주주의가 있고, 너희에겐 분명히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그러니 너무 기죽어 있지도 말고, 수동적으로 모든 걸 의식 없이 받아들이지도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현재의 학교는 학생들에게서 생각하는 힘을 빼앗고 있진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백성이 멍청하고 의식이 없어야 정치하기 편한 과거 절대왕정처럼, 학생을 멍청하게 키우는 것이 학교가 가야할 길은 아니다. 학교의 주인은 교장이 아니라 학생이고, 학생은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표현할 권리가 있다. 하루 빨리 학생에게 제일 많은 영향을 끼치는 교육청장을 뽑을 투표권조차 학생에게 주지 않는 이상한 제도 등을 벗어나 청소년의 권리가 신장되는 그 날을, 광장에도 있고, 학교에도 반드시 있어야하는 민주주의가 허울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학생 곁에도 존재할 그 날을, 나는 여전히 꿈꾸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