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박 시장 역사인식 0점? 오류역사배포 강행 뭇매
인천 박 시장 역사인식 0점? 오류역사배포 강행 뭇매
  • 윤수진 기자
  • 승인 2019.03.27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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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역사 수정 배포 요구 묵살
혈세낭비 치명적 역사오류 반교육적
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 지역 내 초·중·고등학생 위해 ‘2019년판 인천역사달력’ 제작·배포
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 지역 내 초·중·고등학생 위해 ‘2019년판 인천역사달력’ 제작·배포

인천 박시장의 역사인식이 0점인 것으로 드러나 시민단체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더 나아가 시민단체들과 언론들의 2019년판 역사달력에 대한 수정배포 요구도 묵살한 체 배포에 나서 혈세낭비는 물론 반교육적 행위란 지탄에 직면해 있다.

인천문화재단(이사장 박남춘) 산하 인천역사문화센터 등 인천경실련이 정식으로 고증을 요청했지만 구두로만 응하는 척하고 정식 접수는 방기한 체 해명이나 회신도 하지 않아 더욱 격분케 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인천경실련은 27일 관내 초중고에 역사달력 배포를 강행한 오류투성이 역사달력을 전량회수 폐기와 정식 감사청구 강력하게 요구했다.

시민단체가 인천정체성바로세우기 및 역사고증에 대한 시스템 구축 마련을 박 시장에게 강력히 요구하고 나와 향후 나올 감사결과가 주목을 끌 전망이다.

경실련은 “인천문화재단 재단이사장인 박 시장은 책임을 통감하고 시민에게 사과하고 역사오류 수정으로 인천 정체성을 확보하라”고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리고 인천교육의 기본 틀을 바르게 잡아야할 책무를 반기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사 청산 및 역사인식의 크나큰 오류가 지속된다면 초. 중. 고생에게 일베와 같은 극우 이념이 무분별하게 주입되는 등 역사인식에 더 큰 문제가 생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인천경실련은 “지난달 18일 인천역사문화센터가 교육청 협조 없이 관내 학교에 역사달력 우편 발송을 했다. 지난21일에는 시가 고증에 대한 회신 등을 거부하자 시에 고증 요청 민원 접수를 으나 응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에, 인천경실련은 학계, 전문가 등에 검토 의뢰하여 오류 사례를 구체화했다고 밝혔다.

주요 오류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제작 취지 위배

▲ 인천의 3.1운동은 3월초∼4월 초순까지 인천, 부평, 강화, 교동, 용유, 옹진 등 전역에서 펼쳐짐. 반면 달력에는 3∼4월을 통틀어 4건만 소개함. 3월 28일, 혈성단의 용유 만세운동(기념비 현존) 등이 누락되어 있어, 지역의 만세운동 역사 찾기에 더욱 분발해야 함.

▲ 3.1운동을 일으키는 한 계기가 됐던 2. 8 독립선언이 누락돼 있어 달력 제작 취지가 무색함.

역사적 사실 왜곡 및 오류

▲ 인천항 개항일, 2월 8일로 왜곡. 일본은 1883년 1월 1일(조선 음력 1882년 11월 23일), 인천항을 강제 개항함.

▲ 인천시민의 날, 10월 11일로 왜곡. 1991년부터 인천시민의 날은 10월 15일.

▲ 황어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심혁성 애국지사가, 달력에 명시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시로 지하 활동과 군자금 모금 활동”을 했다는 고증 자료가 없음.(달력 5월 삽화 설명 중에)

▲ 인천 최초의 통화 기록은 1898년 1월 28일, 인천감리서(監理署)와 외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간 인천항 선박 입항 보고임.(달력에는 1월 24일로)

▲ 달력에 명시된 고종이 인천감리서에 수감 중이던 김구 선생의 사형집행을 ‘전화’로 중단시켰다는 이야기는 착오이기에, ‘전보’로 바로 잡아야 함. 백범일지(김구 지음, 도진순 주해, 돌베개) 각주에 제시됨.(달력 1월 삽화 설명 중에)

▲ 인천 앞바다에서 발발한 러일전쟁(해전)은 1904년 2월 9일임. 이에 일본은 이듬해인 1905년부터 2월 9일을 인천Day로 기념함.(달력에는 2월 8일로)

▲ 2월 16일 청군, 강화도 침입(1637, 병자호란)은 혼란 초래할 수 있음. 병자호란은 1636년임.

▲ 달력의 ‘남구’는 ‘미추홀구’로, 내리교회 ‘존슨’ 목사는 ‘존스’ 목사로 바로 잡아야

■ 3.1운동의 정신과 인천 정체성 측면에서 잘못된 표현되거나 접근한 사건도 발견됨.

잘못된 표현방식

▲ 국내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철도는 1899년 9월 18일, 인천역에서 개통식을 열고 인천에서 서울 노량진까지 운행함. 달력 9월 삽화 설명에는 “경인선 철도는 1899년 9월 서울 노량진에서 인천역까지 운행하였다.”로 기술함. 인천의 입장에서 표현해야.

▲ 1884년, 국내 최초의 목조 대불호텔(서양식)이 앞서 엄존했기에 삽화 속 “1889년 3층 벽돌건물 대불호텔은 국내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라는 설명이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보완 필요함.

▲ ‘제물포구락부 회관’은 ‘제물포구락부’로 써야 함,

▲ ‘게릭호’는 일반적으로 ‘갤릭호’라 쓴다.

잘못된 접근방식

▲ 달력에 명시된 “황어장터 독립만세운동…심혁성 등 주모자 체포”의 ‘주모자’란 설명은 일본 제국주의 시각에서 접근한 표현임.(달력 3월 24일자 설명 중에)

▲ 독립운동가 홍진을 비롯한 13개 도 대표자들은 각국공원에 모여 “한성정부 설치를 논의”했다고 명시했으나 한성정부 ‘수립’이 역사적으로 정확한 표현임.(달력 4월 삽화 설명 중에)

▲ 인천 최초의 신문인 대중일보 창간(1945.10.07) 누락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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