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마산(現 창원) 지역에서 민주주의의 불꽃이 피어난 지 40년
부산·마산(現 창원) 지역에서 민주주의의 불꽃이 피어난 지 40년
  • 박영미 기자
  • 승인 2019.10.10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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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2019…지금 여기 ‘우리들의 부마’가 있다...

부산·마산(現 창원) 지역에서 민주주의의 불꽃이 피어난 지 40년 만에, 마침내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이라는 뜻깊은 결실을 이뤄냈다고 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은 눈시울을 붉혔다.

이는 유신독재에 혹독한 희생을 치렀던 부산·마산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과 간절한 염원의 결과이기도 하다.

송 이사장은 그동안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은 부산과 창원, 경상남도의 지자체와 협력해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국회토론회와 지정촉구대회를 개최하는 등 시민들의 의지를 모으는 적극적인 활동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또한 2019년은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서, 정부와 국민이 함께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긴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송 이사장은 강조했다.

1979년 10월, 유신의 군부독재 아래 부산과 마산(現 창원)의 시민들이 맨몸으로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일어났고, “이는 독재에 맞선 시민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것으로, 이후 대한민국은 대단한 변혁을 겪었다”고 송 이사장은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 사망했고, 그 다음 해에 일어난 5·18민주화운동은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이라는 의미에서 부마민주항쟁과 결이 같다고 할 수 있으며, 그 때는 군부독재를 몰아내지 못했지만 1987년 6·10항쟁으로 드디어 대통령직선제를 이룩할 수 있었다고 송 이사장은 전했다.

이처럼 큰 줄기에 있는 사건들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부마민주항쟁이 지니는 의미는 매우 크고 역사적 의미와 성과는 실로 놀라웠지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며, 부마민주항쟁은 지난 40년 동안 잊혀진 역사, 지역의 미미한 사건으로 취급되어 여타 민주화 운동들에 비해 현저히 저평가되어온 게 사실이라고 송 이사장은 역설했다.

또한 송 이사장은 항쟁 당시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된 분들의 고통은 망각 되어버렸고, 자신의 정당한 행위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했기에, 많이 늦었지만 이번 국가기념일 지정을 통해 그분들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바라고 부마민주항쟁의 의미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40년 전 평범한 대학생, 회사원, 고등학생, 상인, 노동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민주주의를 향한 용감한 걸음을 내디뎠고, 이 걸음은 유신체제를 끝장내고 이듬해 5월 광주로, 1987년에는 전국을 뒤흔드는 외침이 되어 이 땅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했으며, 오늘날에는 촛불혁명으로 다시 한 번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민주시민임을 보여주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송 이사장은 설명했다.

부마민주항쟁은 어느 한 지역의 국한된 민주화운동이 아닌 국민 모두에게 “우리들의 부마”로 기억해야 할 역사이고, 군부독재에 항거해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을 외쳤던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며 우리가 향유하는 민주주의가 결코 가볍게 이룩된 것이 아님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송 이사장은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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